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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


12세 삭주공(늑정공파) 1746~1829

▲삭주공 일기; 삭주공께서 17세부터 돌아가시기까지 68년 동안 쓰셨다.(기타 사진 자료 `사진 자료실`참조)

 

자는 용겸(用謙) 호는 서산와(西山窩)이시다. 영조 1746년에 나시어 순조 1829년에 돌아가셨다. 1780(정조 4) 무과에 급제하여 1784년 선전관(宣傳官)을 시작으로 진동만호(鎭東萬戶), 당상선전관(3), 삭주부사, 홍주영장(洪州營將), 강화중군, (加德僉使)30여년 동안 중앙과 지방 주요 무관직 벼슬을 지내셨다. 특히 삭주공의 조부 되시는 병사공(휘 계정)께서 수문장으로 재임 시 직무를 원칙대로 잘 수행하여 영조의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사실을 정조가 상기하여 1793년 삭주부사로 임명되는 파격적인 승진이 있었다. 정조의 신임이 두터울 뿐 아니라 그 당시 실세였고 영의정인 남인의 거두 채제공의 후원이 있어 영남 출신 남인 무관으로 임금의 측근에서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았다.

저술로는 '종시록(終始錄)'과 '가법정제(家法正制)'가 있으며, 68년에 걸쳐 기록한 일기가 전한다. 이 분의 일기는 18세기와 19세기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던 조선후기 무관직과 관련한 정보와 선산지역 유교 사회와 문중 그리고 양반의 생활상 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후손이 소장을 하다 사료적인 가치가 높아 국사편찬위원회에 수탁 소장되고 있다. 문동(선산읍 독동리)에 세거하던 늑정공파 중 참판공(휘 성빈) 및 병사공(휘 계정)의 후손을 화림(신림리)으로 이주 시키신 분이시다.

출처:정조실록, 경주노씨족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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