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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함


5세 송암공 1516~1573

()는 수함(守?), 자는 경부(敬夫) 호는 송암(松菴)이시다. 아버지는 동래교수를 하신 휘() 희식(希軾)이시며 어머니는 사직 벼슬을 하신 보은 이종필(李宗弼)의 따님이시다. 늑정공파, 역락재공파, 경암공파 총칭하는 송암공파의 파조이시다.

중종 1516년에 나셔셔 선조 1573년에 돌아가셨다. 송당 박영 선생에게 수업하셨다. 중종 1540년에 성균진사가 되셨다. 당시 유명 인사인 진락 김취성, 후계 김범, 지촌 송순, 구암 김취문, 송정 최응룡 등과 어울리셨다. 전배(첫번째 결혼한 부인)는 전의 이씨이고, 후배(전배가 돌아가시고 두번째 결혼하신 부인)는 옥산 장씨이시다. 옥산 장씨께서는 조선 중기 유명한 여헌학파의 종장 여헌 장현광의 누님이시다. 아드님이 휘 경준, 휘 경인, 휘 경필, 휘 경건, 휘 경륜, 휘 경임, 휘 경전, 휘 경동 여덟 분이시며, 따님 한 분은 공천수(孔天壽)에게 출가 하셨다. 휘 경준, 휘 경인께서는 후사 없으셨고 휘 경필은 늑정공파의 파조로서 안기도 찰방을 하셨다. 휘 경건의 배 되시는 여산 송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에 항거하다 순절하여 열녀비(烈女碑)를 받았다. 휘 경륜께서는 역락재공파의 파조되시며 휘 경필, 휘 경임과 같이 상산(지금의 상주)에서 의병 활동을 하셨다. 휘 경임은 경암공파의 파조시며 문과에 급제하시어 홍문관 교리, 상주목사 그리고 임진왜란 시 오리 이원익 체찰사의 종사관 등 내외 요직을 역임하셨다. 휘 경전께서는 무과에 급제하셨으며 임진왜란 때 북천 전투에서 휘 경동과 같이 전사하셨다.

송암공께서는 선산지역의 경주(안강)노씨 늑정공파, 역락재공파, 경암공파가 대세를 이을 수 있는 초석을 만든 분으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이장을 할 때, 그 당시 사림으로 최고 지배계층의 장례 절차를 확인 할 수 있는 관, 의류, 편지, 책자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복원 중이며 산소 내부의 깊이와 규모로 볼 때 그 당시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경주노씨 족보

  ▲사진 설명

2009년 이장 시 송암공이 계시던 관 외부의 모습이다. 관을 덥고 있는 것은 중국의 역사서 춘추를 낱장으로 뜯어서 붙인것과 고인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당시 유림으로 지배계층의 명문가의 사람이 죽으면 고인이 생전에 자주 읽던 책을 뜻어서 덥거나 제문 편지 등을 같이 묻었다. 송암공의 산소는 전의 이씨와 합폄으로 약10미터 깊이에 모셔져 있었으며 그 밑에 약50센티 정도 두께의 회벽, 10센티 이상의 두층으로 유황, 숯으로 덥혀 있었다. 관 안은 생전에 입으시던 옷 특히 송암공께서 입고 계시던 분홍빛 두루마기는 압권이었다. 산소 내부의 모습은 그 당시 국내 어떤 최고의 명문가에서 쉽게 할 수 없었던 최고 수준의 유교 장례의 모습를 볼 수 있어서 그 당시 우리 가문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서찰 등 그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유추할 수 있는 다량의 유물이 나와서 진환종회장께서 서울 유명 대학의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복원 중이다. 새로운 족보 편찬사업이 마무리 되면 복원된 유물도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촬영, 글 용순(늑정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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