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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정


10세 병사공(늑정공파) 1695~1755

▲죽월헌;병사공 재실.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에 있다.(이 외 관련 사진 '사진자료실' 참조)

 

휘는 계정(啓禎) 자는 국휴(國休) ()는 죽월헌(竹月軒)이시다. 숙종 1695년에 나셔셔 영조 1755년에 돌아가셨다. 1725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경상감영 별군관으로 차임(差任) 되었으며 1732년에는 김취로의 천거로 수문장에 임명되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수문장 재임 시 직무를 원칙대로 잘 수행하여 60여년 후에 손자 되시는 삭주공(휘 상추)께서 정조에게 신임을 받아 삭주부사가 되시는 계기가 된다. 그 후 훈련원 판관, 박천군수, 위원군수, 선천방어사, 우림위장, 어영천총, 전라우수사,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등 주요 무관 관직을 역임 하셨으나 반대 정파(노론)의 끊임없는 탄핵이 있어 낙향하셨다. 사후 몇 년 뒤인 1759년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장헌세자(당시 대리청정)가 예관을 파견하여 제사를 지냈다. 갑술환국(숙종 1694) 이후 남인의 몰락과 월파공(휘 이익)의 상소 사건 이후 문관 관직으로 진출이 어려웠던 시절 무과로써 고군분투하여 입신양명 하신 분으로, 조선 중기 이후 당시 절치절명의 위기에 있던, 우리 문중을 살린 대표적인 분이시다.

출처: 영조실록, 경주노씨 족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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