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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 일기"에 기록된 정조의 죽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29 17:29:31       조회수 : 2145 파일 :

정조(正祖)가 승하(昇遐)하시던 날,,,

정조가 승하(昇遐; 임금이 세상을 떠남) 할 때 즈음 서산와공(노상추)께서는 궁궐과 수도(한양)을 지키는 금위영(禁衛營)의 천총(千摠; 3. 지금의 육군 소장)으로 재직하고 계셨다. 특히 정조의 총애를 받으신 서산와공께서는 정조의 병환 중 침소를 지키는 중책을 자주 맡으셨는데 그 때(1800628) 정조께서 승하하셔서 그 날의 상황을 일기로 적으신 것이다.

서산와공께서는 조선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인 정조의 승하 그리고 순조의 즉위와 이로 시작되는 세도 정치 시작의 정치적인 상황에 권력의 열세인 영남 남인 그리고 정조의 총애를 받은 고급 무관으로서 그 당시 조정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상세히 적은 이 일기의 내용들은 정치사적인 면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고 한다.

 

 

?二十八日己卯, 朝暘.

見朝紙, 昨日藥房入侍, 進御加八物湯, 前方中加乾薑一?, 人蔘一?, 丁香加二粒, 當歸白

芍藥減三分, 川芎縮砂減二分, 一貼更爲煎入事, 下敎. 進御人蔘粟米飮五?重煎入事,

. 更爲煎入事, 下敎. 今日內閣?政院?玉堂問安, 二品以上六曹?大司諫, 勿爲問安事, 下敎.

又進人蔘一兩重煎入事, 下敎, 伏慮萬萬, 而尙未直宿, 怪訝之際, 日猶未時, 禁營下人急走

告曰, 上候危急, 余卽馳進禁衛新營, 同僚之先到者, 見余呼哭曰, 上候已至無可及, 已傳大

, 因命宮城百官及軍門, 齊到信地, 酉時主上昇遐于昌慶宮之迎春軒, 是何變. 是何變.

壽今年四十▦↔▦二十五年, 東邸今年十一歲, 而姑未嘉禮▦▦▦▦亦未回還, 國事之罔極,

不忍不言忍言. 且余今朔, 受巡落點五次於後望, 天恩竟止是矣, 天崩之痛, 臣民所同, 而惟

我厚被之恩, 萬世不滅, 痛極痛極, 五內如?. 元帥劃出余爲兼別將, 別將卽宣傳官廳行首故

, 進曜金門外軍幕, 望闕號哭, 心肝如焚, 君與父一般, 此之謂也. 宮城西墻乃本營字內也,

元帥結陣于金虎門外, 景秋門以下, 中軍及無軍, 千摠把摠哨官設帳幕. 景秋門以上, 至曜金

門以下, 則以別破陣雜色, 百名結陣, 以張端川 重吉領訓局步軍三哨, 自曜金門以上, 至拱

北門墻外結陣, 騎士三番則結陣于曜金門大路, 至拱北門下街路, 明燭達夜. 每參哭班, 心懷

如?, 夜不掩目, 痛極痛極, 不能形言, 感君之恩, 豈非赤心耶. 是夜行襲儀.

?1800628

맑음

조보를 보았다. 어제 약방이 입시하여 가팔물탕을 진어했다. 국왕이 인삼 속미음 5

을 두 번 다려 들이라고 하셨다. 다시 다려 들이라고 하교하셨다. 오늘 내각, 정원,

당은 문안하고, 2품 이상 육조, 대사간은 문안하지 말라 하교하셨다. 또 인삼 1량을 두

번 다려 들이라 하교하셨다. 엎드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직도 직숙(直宿)하지 않아 의심하고 있던 터에, 미시(오후 두 시) 쯤 되었을 대 금위

(禁衛營) 하인이 급히 달려와 상후가 위급합니다.”고 고했다. 나는 곧장 금위영 신영

(新營)으로 말을 타고 달려갔다. 동료 가운데 먼저 도착한 이가 나를 보고 상후(上候)

이미 여기에 이르렀다. 이미 대보(大寶)를 전했고, 궁성에 있는 백관과 군문들은 모두

신지(信地)에 모이게 하셨다.” 유시(오후 6)에 주상이 창경궁의 영춘헌에서 승하하셨

. 이것이 무슨 변고인고! 무슨 변고인고! 성상의 연세 금년 49, 즉위하신지 25년이

, 세자는 나이 11세로 아직 가례를 치르지도 않았다. 국사가 망극하니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는 또는 이번 달에 다섯 번이나 순장(巡將)에 낙점되었지만, 천은(天恩)이 결국 여기

에서 그치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은 신민이 모두 같겠지만, 나는 특별히 성상

에게서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만세토록 잊을 수 없다. 아주 가슴 아프다. 오장육부가

모두 불에 타는 듯 하다.

원수(元帥)가 나를 겸별장(兼別將)에 임명했다. 별장은 곧 선전관청(宣傳官廳)의 행수(

). 요금문 밖 군막에 들어가 대궐을 향해 울며 곡을 했다. 마음과 간장이 타들어가

, “군부(君父)가 한 가지다.”는 것이 이것을 일컫는 것이다.

궁성의 서쪽 담장은 본영(本營) 안쪽이다. 원수(元帥)는 금호문 밖에 결진했고, 경추문

이하는 중군(中軍)과 무군(撫軍), 천총(千摠), 파총(把摠), 초관(哨官)이 장막을 쳤다. 경추

문으로부터 요금문 이하는 별파진(別破陣)의 잡색(雜色) 100여 명 결진했다. 단천(端川)

장중길이 훈련도감의 보군(步軍) 3()를 이끌고 요금문으로부터 공북문 담장 밖에 이

르러 결진했다. 기사(騎士) 3번은 요금문 대로에 결진하여 공북문 아래 도로까지 이르

렀다.

밤새 불을 밝혔다. 매번 곡반(哭班)에 참석했는데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슴이 아주 아프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상의 은

혜에 감사하는 것이 어찌 적심(赤心)이 아니겠는가? 이날 밤 습의(習儀)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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