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노씨와 안강노씨 어느 것으로 부르나?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05-26 22:38:05 조회수 : 5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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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안강현에 대하여, “안강현은 본래 신라 비화현인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겨쳐서 의창군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 현종 9년 무여에 주.부.군.현의 관할을 정하매 경주부의 임내(任內;고려?조선 초 때 일종의 특수 행정 구역)로 붙였고, 공양왕 2년에 비로소 감무(監務; 고려시대에 지방의 군 ·현에 파견한 관직)를 두었으며, 본조 태조3년 갑술에 다시 본부의 임내로 하였다. ……안강현의 성이 5이니, 안.노.김.황.염이오……”라고 적혀 있다.
위의 내용에 의하면 안강현은 원래 신라 ‘비화현’→통일신라 ‘의창군’(지금의 흥해)관할의 ‘안강현’→고려 헌종 경주부 관할→고려 공양왕 경주 속현에서 독립적인 현→조선 태조3년 경주부의 속현으로 되었다가 16세기 이후 경주의 하나의 면(面)으로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일종의 백과사전)을 보면 교하,광주,경주,풍천 노씨가 그 때까지 조선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노씨 명문들로 되어 있고 경주노씨로 표기되어 있다. 18,9세기에 지어진 경암공(휘 경임1569~1620)의 행장이나, 병사공(휘 계정 1695~1755)의 묘갈명 등에는 ‘慶州安康(경주안강)’으로 표기 되어 있다.
대동운부군옥에는 “其先出於安康縣 麗初盧光漢之後;선대가 고려초 안강현 출신 노광한”이라고 기록하고도 경주노씨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안강현이 폐현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후 우리 조상들도 안강이 폐현이 되어 경주 소속의 면에 불과하지만 본래 출신을 강조하고자 ‘경주 안강’으로 기록하였다고 본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경주(안강)’ 또는 ‘경주 안강’으로 기록하고 표현(말로 할 때)은 경주나 안강 어떻게 하든 무방하다 생각된다.
참고문헌 : 박홍갑 박사(국사편찬위원회) 저, 《조선조 사족사회의 전개》 중 ‘제2장 조선조 안강노씨의 선산지역 정착과 활동’
족보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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