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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노씨와 안강노씨 어느 것으로 부르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5-26 22:38:05       조회수 : 5259 파일 :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안강현에 대하여, 안강현은 본래 신라 비화현인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겨쳐서 의창군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 현종 9년 무여에 주...현의 관할을 정하매 경주부의 임내(任內;고려?조선 초 때 일종의 특수 행정 구역)로 붙였고, 공양왕 2년에 비로소 감무(監務; 고려시대에 지방의 군 ·현에 파견한 관직)를 두었으며, 본조 태조3년 갑술에 다시 본부의 임내로 하였다. ……안강현의 성이 5이니, ....염이오……라고 적혀 있다.

위의 내용에 의하면 안강현은 원래 신라 비화현통일신라 의창군’(지금의 흥해)관할의 안강현고려 헌종 경주부 관할고려 공양왕 경주 속현에서 독립적인 현조선 태조3년 경주부의 속현으로 되었다가 16세기 이후 경주의 하나의 면()으로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일종의 백과사전)을 보면 교하,광주,경주,풍천 노씨가 그 때까지 조선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노씨 명문들로 되어 있고 경주노씨로 표기되어 있다. 18,9세기에 지어진 경암공(휘 경임1569~1620)의 행장이나, 병사공(휘 계정 1695~1755)의 묘갈명 등에는 慶州安康(경주안강)으로 표기 되어 있다.

대동운부군옥에는 其先出於安康縣 麗初盧光漢之後;선대가 고려초 안강현 출신 노광한이라고 기록하고도 경주노씨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안강현이 폐현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후 우리 조상들도 안강이 폐현이 되어 경주 소속의 면에 불과하지만 본래 출신을 강조하고자 경주 안강으로 기록하였다고 본다. 이에 우리 후손들은 경주(안강)’ 또는 경주 안강으로 기록하고 표현(말로 할 때)은 경주나 안강 어떻게 하든 무방하다 생각된다.

 

참고문헌 : 박홍갑 박사(국사편찬위원회) , 조선조 사족사회의 전개2장 조선조 안강노씨의 선산지역 정착과 활동

족보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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