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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노상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1 10:35:42       조회수 : 1011 파일 : 1919021142정조와서산와공2.pdf

정조와 노상추

서산와노상추연구소 소장 노용순

정조 때 대표적인 영남 출신 총신(寵臣:임금에게 총애를 받는 신하) 무관인 노상추(盧尙樞 1746~1829년 號  西山窩)와 영조 때 병마절도사까지 역임한 그의 조부 노계정(盧啓禎 1695~1755 號 竹月軒)은 조선 중기 이후 남인 당파가 중앙 정치에서 멀어지고 노이익(盧以益)이 갑술환국(1694) 때 대표적인 영남 남인으로 죽임을 당한 후 어려움에 처한 선산의 안강 노씨를 다시 일으킨 중흥조(中興祖)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개인이 평생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기는 어렵다. 노상추는 17세부터 84세 임종하기 몇 일 전까지 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중간에 15여년 동안의 일기가 없어졌지만, 17세부터 가장으로서 고향에서의 생활, 과거 준비와 한양으로의 과거 길과 거기에서의 생활, 무과 급제 후 40여세부터의 벼슬 생활, 68세에 벼슬에서 은퇴하고 84세까지 고향에서의 생활을 적은 남아 있는 53년 동안의 일기는 그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후손들은 노상추를 삭주공(朔州公)이라 하며 그의 간찰 등을 보면 노삭주(盧朔州)”라 되어 있다. 이는 노상추가 삭주부사로 임명되는 과정이 매우 명예스러우면서도 대표 관직이기 때문이다.

 ()에서 기록한 내용이 일기와 같은 개인의 기록에서 볼 수 있고, 관에서 기록할 수 없는 내용까지 세세히 적혀 있다면 그 개인의 기록은 가치를 더할 것이다. 아래의 글(첨부된 글)은 노상추가 정조에게 발탁되어 삭주부사가 되는 과정과 해임되고 그리고 다시 벼슬길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 정조의 처분에 대한 내용이 적힌 조선의 대표적인 관찬사서(官撰史書)이고 임금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성록』의 기록과 『노상추일기』를 같이 보면서 설명한 것이다.

(전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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